횃불로 타오른 232만 촛불 “박근혜 즉각 퇴진”

횃불로 타오른 232만 촛불 “박근혜 즉각 퇴진”

촛불 민심이 결국 횃불로 타올랐다. 그 넓은 광장과 도로는, 끝없이 밀려드는 촛불로 미어터졌다. 야비한 대통령과 어리석은 정치권이 성난 민심에 또다시 불을 질렀다.

3일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요구 ‘6차 촛불집회’는 분노한 민심의 쓰나미였다. 주최 쪽 추산(연인원)으로 역대 가장 많은 232만명이 전국 100여곳에서 촛불을 들었다. 전국적인 ‘집중행동 집회’가 열린 지난주 보다 40여 만명이 늘어난 사상 최대 규모다. “박근혜는 퇴진하라” “더이상은 못참겠다” “명예퇴진 말도안돼” “박근혜를 구속하라”…. 묵묵히 지켜보던 민심에 또다시 불을 지른 건, 박근혜 대통령의 세번째 ‘꼼수 담화’와 그 이후 벌어진 정치권의 우왕좌왕 행태였다. 이날 처음 자녀와 함께 촛불집회에 나왔다는 이성권(44·동대문구 장안동·사업)씨는 “촛불집회 내내 청와대는 ‘국민의 뜻을 무겁게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다 거짓이었다. 혹시나 했던 세번째 담화(11월29일)도 결국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모든 책임을 국회에 떠넘겼다. 이젠 일말의 기대도 접었다. 결국 국민들이 직접 끌어내릴 수 밖에 없다.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려 나왔다”고 말했다.

사실 이날 ‘사상 최대’ 촛불집회는 예상 밖이었다. 이른바 ‘광화문 총집결’을 시도한 지난달 26일보다 많지 않을 것으로 봤다. 주최 쪽 관계자는 “지난 주말 촛불로 ‘민심은 충분히 의사를 전달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3차 대국민 담화에서 사실상 스스로 자진 퇴진을 거부하면서 사람들이 거리로 더 쏟아져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다섯 차례 촛불집회는 주최 쪽 추산(전국 기준)으로, 10월29일(1차) 3만명, 11월5일(2차) 30만명, 11월12일(3차) 106만명, 19일(4차) 96만명, 26일(5차) 190만명이 모였다.

오후 7시 정각. 광화문광장 일대는 순식간에 짙은 어둠이 깔렸다. 무대 사회자의 카운트다운에 맞춰 수십만 촛불이 일제히 꺼졌다. 무대 스크린에 뚜렷한 여덞글자가 새겨졌다. “박근혜는 퇴진하라” 어둠 속 시민들은 1분여 동안 “박근혜는 퇴진하라”는 구호를 일제히 한 목소리로 외쳤다. 함성은 공명이 되어 광화문광장을 거쳐 세종로교차로에서 시청앞까지 울려퍼졌다. 무대 공연에 나선 가수 한영애씨는 “여러분 지치지 마십쇼. 힘내십쇼. 천년의 어둠도 촛불 하나로 밝힐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이 촛불이 우리의 또다른 민주의 역사를 쓰는 새로운 자리 됐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반드시 올 겁니다”라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한씨는 <내나라 내겨레> <홀로아리랑>을 시민들과 함께 불렀다. 촛불 시민들은 즐겁고 씩씩했다. 본집회에 앞서 열린 사전행사에서, 시민들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의 얼굴이 그려진 ‘똥볼’을 차며 즐거워했다. 아이들은 광장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그림을 그렸다. ‘재벌이 몸통! 재벌-전경련 해체 재벌 범죄 엑스포’에서 재벌 총수들을 흉내낸 퍼포먼스에도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6차 촛불집회가 열리는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주최한 새누리당 해체 요구 집회에서 시민들이 '4월 퇴진, 6월 조기대선'을 당론으로 채택, 탄핵 추진에 제동을 건 새누리당의 대형 깃발을 찢고 있다. 김정효 기자
6차 촛불집회가 열리는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주최한 새누리당 해체 요구 집회에서 시민들이 ‘4월 퇴진, 6월 조기대선’을 당론으로 채택, 탄핵 추진에 제동을 건 새누리당의 대형 깃발을 찢고 있다. 김정효 기자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거부한 새누리당에 대한 촛불 민심의 분노는 거셌다. 이날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는 처음으로 규탄 집회가 열렸다. 집회에 나온 주부 서아무개(52)씨는 “한숨부터 나온다. 친박이 아닌 비박은 그래도 국민 대변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자기들 앞길만 생각하고 나라와 국민은 맘에 두지 않는 새누리당에 직접 외치려고 나왔다”고 말했다. 집회 참가 시민들은 “국정 농단 공범 새누리당”이라고 쓰인 현수막을 펼쳐 함께 찢고, 새누리당 당사에 걸린 하얀 현수막에 계란을 던져 노랗게 물들였다.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며 우왕좌왕하는 야권을 향한 비판도 거셌다. 대학생 최하경(22)씨는 “벌써부터 야당들끼리, 대선 주자들끼리 탄핵을 놓고 유불리는 따지는 것 같다. 여소야대를 만들어 줬는데도 숫자가 부족하다고 하니…. 야당도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받들지 않으면 새누리당과 다를게 별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6차 주말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횃불을 들고서 청와대로 행진하고 있다. 김태형기자 xogud555@hani.co.kr
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6차 주말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횃불을 들고서 청와대로 행진하고 있다. 김태형기자 xogud555@hani.co.kr

박 대통령을 향한 분노의 민심은 ‘청와대 앞 100m’에서 횃불로 타올랐다. 이날 저녁 7시20분께 본집회가 끝난 뒤 청와대를 향한 행진에는 횃불을 든 416명의 시위대가 앞장을 섰다. 세월호 참사가 난 4월16일을 상징한 인원수다. 횃불 대열 선두에는 방송차량이 길을 트고, 수의를 입고 포승줄에 묶인 박근혜 대통령의 등신대가 뒤따랐다. 청와대 100m 앞 효자치안센터 앞에서도 일부 시위대가 횃불을 켜들었다. ‘박근혜 퇴진’ 구호는 ‘박근혜 구속’으로 바뀌었다. 세월호 유가족들도 청와대 앞 집회 선두에 섰다. 청와대 앞에서 행진이 허용된 시간이 훨씬 지난 밤늦게까지 시민들은 떠나길 거부한 채, 청와대를 향해 분노의 함성을 질렀다.

[한겨레 / 김지훈 안영춘 박수진 고한솔 기자 / honesty@hani.co.kr]
http://m.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73148.html